[리뷰]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의 표식을 남겼다, 바로 내 아버지가…연극 ‘문신’ 허다민 기자 2017-08-11


실화 모티브로 제작한 극, 근친상간 소재로 폭력 관한 날카로운 질문 제시해
▲ 연극 ‘문신(연출 백순원)’ 공연 장면.(뉴스컬처)     ©사진=극단 씨어터백
 
가족.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영원히 내 편이 돼줄 것이라 믿는 존재. 그러나 누군가에게 가족은 벗어 던지고 싶은 족쇄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아직 가정 폭력의 뿌리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밀봉해왔지만 이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정폭력. 지난 9일부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문신(연출 백순원)’은 그중 특히 더 은폐돼온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신’은 독일의 주목받는 젊은 극작가 데아 로어가 1992년도 쓴 초기작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연극 언어와 극단적 현실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극단 씨어터 백이 지난해 성공적으로 초연을 선보였다. 올해는 오는 12월까지 이어지는 ‘권리장전2017_국가본색’ 페스티벌의 포문을 열게 될 작품으로 선정됐다.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딸이 아버지를 살해한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문신’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최악의 범죄 ‘요젭 프리츨 사건’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불리기도 했다. 프리츨은 당시 11살인 친딸 엘리자베스를 성폭행한 이후, 24년 동안 특수 장치가 설치된 자신의 지하실에 감금한 채 성폭행해 7명의 자녀까지 낳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는 7명 중 한 명을 내버려 둬 살해한 혐의까지 받았고, 정신치료와 함께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
 
극에 등장하는 아니타의 아버지도 프리츨과 별다른 바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가정을 늑대 무리, 자신을 늑대 우두머리에 비유하며 집안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해버린다. 질문할 때는 꼭 손을 들어 허락을 구해야 했고,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아니타’와 ‘룰루’다. 그중 특히 첫째 딸 아니타를 예뻐한다. 자신의 말을 잘 따르기 때문이다.
 
▲ 연극 ‘문신(연출 백순원)’ 공연 장면.(뉴스컬처)     ©사진=극단 씨어터백
 
“무조건 듣고 따르는 것이 정숙한 딸의 덕목이다.” 아버지는 몹쓸 교육으로 아니타가 평범한 아이처럼 자라지 못하게 했다. 가정에서 배운 것과 너무나 다른 세상의 모습에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이웃에 사는 ‘파울’이다. 아니타는 그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만 아니타를 방관하던 어머니와 동생이 그녀의 새 출발을 완강히 반대한다.
 
근절돼야 할 폭력은 물론 방종과 함구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까지 날카롭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러한 폭력이 한 가정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아니타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도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속에 자리한 고통과 두려움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 이는 아니타의 남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선한 얼굴로 등장했던 파울은 후반부로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타인을 배려하던 마음마저 잃었다. 물론 파울의 변화가 아니타의 잘못은 아니지만 가정의 상처는 타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상기했다.
 
그렇다고 마냥 무겁기만 한 극은 아니다.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배우들은 텅 빈 무대에서 4개의 의자만을 활용해 이야기를 전하는데, 몇 장면에서 이 의자들이 분위기를 환기한다. 버스 좌석으로 시작한 의자는 식탁, 의자, 방문, 침대, 청소기 등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관객의 상상력과 웃음을 끌어올렸다.
 
또한 관객들은 무대를 뛰어다니며 감정을 표출하는 배우들에게 계속해서 반응했다. 아버지의 행동에는 분노의 헛기침을, 아니타와 파울이 달달한 말을 주고받을 때는 부러움의 야유를, 끝나지 않는 비극에는 한숨으로. 아버지의 표현과 행동이 거칠어질수록 침묵했던 가족들과 달리 극장은 표현하고 소통하는 공기가 가득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근친상간 금지다. 이를 알면서도 침묵해야 했기에 어머니는 그토록 “차라리 개가 되고 싶다”고 주장했던 것일까. 개와 달리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인간은 결국 고통의 표식을 지우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살면서 그 상처를 지워낼 방법은 없는 것인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생각, 그러나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오는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공연정보]
공연명: 연극 ‘문신’
연출: 백순원
공연기간: 2017년 8월 9일 ~ 13일
공연장소: 대학로 연우소극장
출연진: 이미라, 이정국, 이승철, 송시우, 이윤주
관람료: 전석 1만원
 
(뉴스컬처=허다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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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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